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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발생시 이렇게 하세요 "

어머님께서 막 운명하셨다.

요양병원에 계신지 1년여 만에 오늘 오전 요양병원 측에서 전화가 와서 가족들 모두 모이라고했다.  마음으로는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 날이 오늘 일 줄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급한 마음에 아무것도 못 챙기고 아내와 요양병원으로 달려갓다.

이미 동생 내외가 요양병원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생 내외 역시 안절 부절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단 요양병원 관계자에게 상황을 물어 봤다.  지금 바로 병실로 올라가서 마지막으로 어머님을 뵈라고 한다. 

이 상황에서 가장 정신을 차려야 할 사람이 나임을 깨닫고 애써 침착한 모습으로 어머님 계신 방으로 발을 옮긴다.  벌써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요양병원 관계자가 절대 우는 모습 보이지 말고 좋은 말과 사랑했다는 말씀을 꼭 드리라는 말에 마음으로 다짐하고 발길을 옮겼다.

 

길지 않은 시간 어머님과의 작별을 마치고 드디어 눈을 감으셨다. 

마치 주무시고 계시는 듯. 그동안 병마와 싸우시며 힘들고 괴로워하시던 그 모습은 간데 없고 편안하고, 조용히 눈을 감고 계신다.  아직 어머님이 돌아가신 것이 실감 나지 않는다.  마치 주무시고 계시는 듯……

잠시의 시간을 깨우는 것은 병원 관계자의 목소리였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네? 나는 돼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혹시 생각해 두신 장례식장은 있으신가요?  이제서야 정신이 든다.  아 그때 내게 전해준 그 사람 전화번호가 핸드폰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는데  … 

이 날을 대비해서 어머님의 사진을 가지고 동영상을 만들어 놨는데 회사 컴퓨터에 저장되어있는데 그건 어떻게 가져오지?  장례절차는 어떻게 해야하지?  온통 머릿속이 복잡해 진다.

동생은 내 눈만 쳐다보고 있다.  동생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일 테니

일단 연합아카이브라고 했지? 

 

거기에 전화를 해 보면 그 때 어머님 아카이브를 제작할 때 장례까지 같이 해 준다고 했고 그동안 꾸준하게 내 카톡으로 이런저런 정보를 제공해 주었으니 거기에 전화를 해 보자

거기서 운명하시자마자 전화하라 했고 절차를 안내 해 준다 하니 전화를 걸어봐야겠다. 

 

병원 안내자에게 잠시만 시간을 달라하니 상의 후 원무과로 내려오란다.  알았다 하니 병원 관계자가 수시를 해야 하니 어머님을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한다.  수시? 모르겠다.  일단 알았다 하고 방을 빠져 나왔다. 

 

어머님과의 이별은 잠시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전혀 모르는 일을 진행해야 하는구나하는 막연한 두려움에 연합아카이브 대표전화로 전화 했다.

 

 

상황실에서 전화를 받는다.

일단 내가 어머님 아카이브를 제작한 회원임을 확인하고 어머님이 계신 장소, 나와의 관계 등을 확인하고 고인 곁에 있는지를 확인 해서 그렇다 하니 우리 장례를 담당할 행사팀장이 5분 내로 전화 할 것이라 하고 우선 요양병원에서 사망진단서를 7부 떼라고 알려 줬다.

잠시 후 담당 장례지도사라는 분이 전화 왔다.

아까 상황실에서 확인한 내용을 그대로 다시 확인 하고 원하는 장례식장, 장례 방법, 준비물 등을 가르쳐 주었다. 

그동안 만약을 대비해서 장례식장을 몇 군데 생각해 둔 곳은 있지만 결정하기도 쉽지 않고 조문객이 얼마나 올지, 얼마나 예산이 들을지, 막상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사전 준비 안한 것이 몹시 후회스럽다. 

 

장례지도사의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하지 못하자 대부분의 상주가 그렇다고 나를 안심시키며 몇 가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였다. 

회사원인지, 자영업인지, 주 조문객 오시는 위치, 그리고 형제 수, 부모님의 형제 숫자 등을 물어보고 대략적인 장례식장 선정 기준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내 형편을 고려해서 장례식장의 선정 기준 등도 알려 주었다. 

 

대략 두 세군데의 장례식장으로 압축되었고 일단 그 곳의 상황을 알아보고 전화 준다 하여 고맙다고 하고 이곳의 처리는 어찌하면 되는가 하고 물으니 장례식장이 결정되면 여기 요양병원에서 장례식장까지 앰블런스를 통해서 운구해야 한다고

그리고 이 곳에서 사망진단서 7통 이상 꼭 떼어 가지고 보관하고 있으라하고 어머님의 주민등록증 영정사진 제작용 사진, 그리고 기타 개인 필요물품 등을 챙겨서 와야 한다고 했다. 

 

어머님 주민등록증은 집에 있을텐데 그럼 지금 집에 가야 하나? 하고 물으니 병원에서 집이 가까우면 시간이 좀 있으니 다녀와도 되고 그렇지 않으면 식구 중에 한 분 다 챙겨서 장례식장으로 바로 오시면 된다 한다.  그리고 여기 요양병원에서 정산을 마치고 수시가 끝나면 알아서 그 장례식장으로 운구 할 수 있도록 배치 하겠다하고 끊었다. 

일단 원무과로 내려가 정산을 마치고 상조회사에서 와서 진행할 것이다라고 말하니 별 말 없이 앰블란스 배치되면 알려달라하고 어머님 수시과정이 끝나면 알려 주겠다 하여 어머님 방에 남겨진 물건들을 정리하라 한다. 

 

아내와 동생 내외를 불러 장례식장 결정과정, 부고 알림 등을 논의 했지만 다들 우와 좌왕 그나마 아내가 어머님 평소 쓰시던 핸드폰을 가져와 그 안에 저장된 분들과 가족, 친구 분들께 연락하겠다고 한다.  아 참 나도 회사에 어머님 돌아가신 것을 알려야 겠는데 오늘 휴일인데…

원무과에 사망진단서 이야기를 하니 몇 통 필요하냐 해서 일단 아까 들은대로 7통 이야기 했다. 이것으로 충분할까? 일단 시키는대로 준비 했다.

다시 전화가 왔다. 

우리가 이야기 한 몇 군데 장례식장에 전화 해 본 결과 조금 저렴한 곳은 공실이 없고 좀 대학병원 장례식장은 마침 자리가 있다고 한다. 

 

아까 조문객 수 산정 할 때 대략 50평 정도로 이야기 했는데 그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겠고 곁에 있던 아내와 동생 내외에게 물어보니 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루자 한다. 

 

그래서 장례지도사분에게 그리로 결정했다 하니 요양병원으로 앰블런스 보낼 테니 한 분 정도만 동승하고 나머지 분들은 집에 들렸다 준비물 등을 챙겨서 장례식장으로 오시라 한다. 

어머님 운명시간이 오전 11시 30분이다. 

아직 어머님이 요양병원에 계시는데 벌써 2시가 다 되어간다. 

요양병원 의사가 사망진단서를 발급하고, 수시라는 것을 하고 대학병원 장례식장으로 이동하기 전인데 벌써 녹초가 되었다.  불과 2-3시간 만에 내가 모르는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져 있었다. 

 

이미 밖에는 앰블런스가 도착해 있고 이송 준비가 끝났다고 한다. 

 

장례지도사라는 분은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기다린다고 한다.  얼굴도 모르고 전화 통화로만 대화를 나누었는데 벌써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제 한숨을 돌리니 그 말뜻이 이해가 갓다.  “운명하시면 일단 제일 먼저 전화부터 주세요” 아 이런 뜻이었구나.

 

앰블런스를 타고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나머지 식구는 각자 차를 가지고 장례식장에 왔다. 

다른 사람의 조문으로 와 보긴 했지만 내가 상주로 와보긴 처음이다. 

 

아버님때는 어려서 어머님 하자는 대로 따라했는데 어머님은 이런 일을 어떻게 다 혼자 치르셨을까 역시 어머님은 대단하셨다는 생각이다. 

 

앰블런스에 실린 어머님이 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아까 나와 통화 한 장례지도사란 분이 인사를 한다.  생각보다 젊고, 샤프해 보인다.  이것도 선입관인가?  일단 어머님 안치 후에 일정 논의 하자 하고 어머님을 장례식장 안치실에 안치 하였다. 

 

하얀 천에 가려진 어머님의 모습에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장례지도사란 분이 곁에서 어머님께서 아직 듣고 계시니까 좋은 말만 하시라 귀뜸해 준다.  무슨 말이지? 아직 듣고 계신다?  말로만 듣던 냉장고 안에 어머님을 안치 시키고 뒤돌아 서니 간신히 서 있던 다리에 힘이 쫙 빠진다. 

내가 잘 모르는 너무 많은 일이 순식간에 한꺼번에 일어나는 구나 곁에 있는 장례지도사가 그리 든든해 보일 수 가 없다.  사실 그 전에 전화 통화, 만난 적도 없는데 불과 몇 시간 만에 집안 식구같이 느껴진다.

 

안치 후 열쇠를 받아 들고 빈소를 결정해야 한다고 해서 장례식장 관계자와 장례지도사 우리 식구 모두가 장례식장 접객실을 둘러 보았다. 

잠깐 동생내외와 상의 한 결과 생각보다 조문객이 많이 올 것 같아 접객실이 좀 컷으면 어떨까 해서 장례지도사 분께 말씀 드렸더니 바로 위 평수도 볼 수 있도록 장례식장 관계자에게 주문 했더니 그러자고 했다.  마침 큰 평수가 있어 그게 낫겠다는 생각에 바로 위 평수로 계약했다. 

 

이제야 어머님 장례를 치룰 곳이 마련 되었습니다.

어머님을 보낸 슬픔보다는 이런저런 절차 마련에 슬플 시간조차 갖기 힘든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드디어 덩그러니 빈 접객실에 아내, 동생내외, 급히 연락받고 뛰어온 이모님 장례지도사 이렇게 남았다. 

다들 전화기를 들고 어머님의 부고를 날리느라 정신 없다.  나도 그래야 하는데 왠지 힘이 빠진다.  이럴때 한꺼번에 누가 알려 주는 서비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 때 장례지도사가 빈소로 잠깐 가족 분들 모이시라 한다. 

어느 덧 장례지도사의 말에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어린아기가 되어 있다.  이만큼도 저 분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아무튼 고맙다.   

아내와 나 동생내외는 접객실 식탁을 앞에두고 장례지도사와 마주 앉았다 아무것도 없는 빈소에 덜렁 앉아 있으니 이제부터는 무얼 해야 하나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마침 장례지도사 분이 여태까지의 진행과정을 설명해 주고 앞으로의 장례 진행에 대하여 설명해 주니 이제야 어렴풋이 그동안 들었던 내용들이 기억이 난다 입관이 어떻고 발인이 어떻고 그냥 무심코 흘려 들었던 이야기 들이 이제야 내게 현실이 되어 다가온다.

장례지도사 분이 종이를 펼쳐놓고 어머님에 대한 이것저것을 물어본다. 

어디 양씨시죠? 버들양입니다.  본관은요? 아차 어머니 본관이 어디더라? 순간 당황했다.  청주아냐?  동생이 대답한다.  아 그런거 같아 맞나?  진작 제대로 찾아 볼걸, 미리미리 준비 해 야 하는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우선 상품 안내서를 보여 준다  연합아카이브에서 제공하는 상조 상품이라 한다.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이것저것 필요하니까 보여 주는게 아니겠는가?  설명은 해 주지만 자꾸 비용에만 눈길이 간다.  이것 저것 어떻게 이렇게 뭘 깎아주고, 뭔 내가 내야하고 가뜩이나 생각이 딴데 가있는데 설명을 자세히 하니까 나도 그렇고 동생도 약간은 지루한가보다. 

 

그냥 알아서 얼마입니다 하면 좋을 텐데..  막상 그렇게 하는 것도 문제가 있을 테니 일단 설명은 끝까지 들어봐야겠다. 

우선 장례상품가격을 결정하고 제단꽃단계에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생겼다.  제단꽃은 관례상 장례식장에서 주문을 해야 한단다.   

 

장례비용을 산출하는 상조회사에서 다 알아서 해주는 것이 아니었나?  아무튼 제단꽃은 나중에 장례식장에서 따로 사람이 나온단다.  화장하실 거죠? 미리 준비해 둔 것이 없으니 화장은 당연한거고, 어머님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어디냐고 물어보신다. 

서울 맞지?

시골에 계시던 어머님을 1년전 병환이 나시고 서울 요양원으로 옮기면서 노부모 부양가족 혜택을 받기 위해 주소지를 우리집으로 해 놓았던 것이 생각 낫다.

 

네 그럼 서울 승화원이나 양재동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 가능하고 비용은 10만원 정도 든다고 했다. 

만일 타 지역사람이 이곳에서 화장을 한다면 10배 가격인 100만원 정도 소요된다 한다.  내 편의로 서울로 주소지를 옮긴 것 여기서 다시 한번 내게 도움을 주는 구나 어머님 감사합니다.

이 대로 장례를 진행 하겠냐고 내게 질문했다. 

 

사실 그렇지 않아도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 당연히 그렇겠지만 그래도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그 사이 밖이 어수선 해진다. 

 

뭐 이것저것 박스가 들어오고 장례식장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 사이 몇 번이나 아내는 불려 나가서 그냥 끄덕끄덕이고 다시 들어오고 무슨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어리둥절 한 모습이 역력하다. 

장례지도사의 얼굴을 쳐다보니 다 설명 해 주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일단 받아 놓으라고 그래도 바로 물어볼 사람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상조부분의 설명과 계약이 끝나고 각각의 설명을 들려준다. 

곧 제단꽃 계약하러 꽃집에서 사람이 올 것이며, 내일 입관시간은 몇시이며, 종교별 장례방식이며, 발인 등…….

다음은 어머님이 영원히 안치하는 부분의 설명이 이어진다. 

평소 어머님께서는 자연을 사랑하셔서 항상 꽃과 들판 이런 곳을 좋아하셨고 혹여 내가 죽더라도 절대 매장은 하지 마라 하셨지만 시골 선산에 묻히신 아버님의 시신은 어찌해야 하는지 그것도 문제다. 

 

납골당, 수목장 등등 설명을 듣고 싶어 질문 했더니 그쪽 전문가가 곧 도착할 예정이니 그때 세부사항은 결정하면 된다고 한다. 

아마 상조회사 안에 여러 개의 전문 업체들이 속해 있는 시스템인가 보다.  바로 그때 장례지도사는 화장장 예약 때문에 잠깐 자리를 비우겠다고 한다.  화장장 따라 발인 시간 등이 정해 지니까 우선적으로 화장장 예약이 급선무라 한다.  일전에 뉴스에 화장장 예약이 너무 안되서 애먹는다는 기사를 본 것같았다. 

 

뒤이어 제단 꽃 사진을 들고 장례식장 꽃 집에서 왔다. 

장례지도사는 적당한 가격을 결정하면 된다고 했는데 제단꽃값이 무척 비쌋고 사진 만 봐서는 판단하기 쉽지 않았다.  역시 비싼 것이 좋아 보이 듯 맘에 드는 것을 고르는데 무척 힘들었다.  이 때 장례지도사분이 조언이 생각나서 너무 화려하지 않은 중간 보다 약간 비싼 제단을 선택했다.  장례지도사 분이 곁에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우리 일 때문에 여기저기 전화를 붙잡고 이야기 하고 있다. 

장례식장 관계자가 음식표를 가져와서 어느것 어느것 주문할 것이냐고 물어 본다. 

이런 큰일을 치러본 경험이 없어 무척 당황스럽다.  몇 인분이나 주문해야 하는지, 어떤것을 주문해야 하는지 아랫동서도 내 눈치만 보고 있다. 

 

그때 장례지도사분이 오셔서 일단 기본적인 밥, 국과 간단한 반찬과 떡, 전 등을 선택해 주셨다. 

 

나머지는 도우미 분들이 오셔서 시키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라 하신다. 

 

참으로 다행이다. 무언가 이것 저것 들어있는 큰 박스를 가져와서 놓고 간다.  일단 뜯어서 정리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멍하니 서있었더니 다 뜯어서 사용하지 말고 꼭 필요한 것만 사용하고 뜯지 않은 것은 나중에 반품 처리가 된다고 한다.  아 이런거구나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그래도 이따 도우미분들이 오신다고 하니 좀 안심이 된다. 

이제 빈소에 음식이 들어오니 드디어 장례를 치루는 구나 하는 실감이 난다.

장례지도사분은 이리저리 왔다갔다 혼자 분주히 움직이고 계시고 짬짬이 이 곳의 진행 상황을 체크 해 가면서 혼자서도 잘 처리한다. 

아내와 동생내외는 여기저기 전화기를 붙들고 연락하고 있고 나는 왠지 모를 공허함에 전화기를 손에 쥐고만 있다. 

친한 친구 몇 명과 회사에 전화해서 어머님 부고를 알리고 나머지는 알아서 연락좀 해주라 했다. 

친지분들은 어디까지 누구에게 전화해야하지? 어머님이 손글씨로 전화번호를 적어둔 수첩이 어머님 집에 있던 것 같았는데…. 

 

예상 못한 것은 아니지만 막상 큰일을 당하고 나니 미리 준비하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후회된다.  애들은 학교에서 올 시간이 되었는데 이리로 오라해야 하는구나 오전에 돌아가셨는데 벌써 오후 4시를 향해 간다. 

 

여지껏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가 고프단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도 잠시 장례지도사분이 찾는다.  상복주문해야 하니 신체 사이즈를 묻는다.  나와 동생 허리 사이즈 키, 그리고 상복을 입을 대상이 몇 명인지 어디까지 입어야 하지? 상주만 입나? 나중에 조카들이 오면 입히나? 일단 장례지도사분께 여쭤보니 상주만 입으면 된다 하신다.  그래 우리 형제만 입으면 되는구나 신체사이즈를 알려 주니 여자용 상복은 눈대중으로 처리를 하시고 계신다.  그 와중에도 개인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주는 구나

내 어머님 상에 다른 사람이 훨씬 분주하다.  나와 아내 동생 내외는 실제로 장례식 준비를 하는게 없다.  아니다 할 줄 모른다. 

 

어느새 빈소에는 영정사진과 제단꽃이 갖춰지고 향이 피워지고 국화꽃이 놓여 있다.  우리 엄마가 저랬었나? 영정사진을 보니 다시금 어머님이 돌아가신 것이 실감난다. 

 

몇몇 조문객들이 속속 도착하고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상가를 다니며 어깨넘어로 배운 장례상식을 총 동원하여 조문을 받는다. 

왜 이리 어색하지? 

바로 그때 모든 준비가 다 되었는지 장례지도사 분이 전 가족을 호출한다.  아직은 일러 조문 오시는 분이 없으니 장례 일정과 예절에 대한 설명을 해 주신단다. 

 

아직 납골당은 정하지 않았는데 막상 장례를 치러보니 장례를 치룬다는 것 보다는 정하고 계약하고 기다리고 인사하고가 다 인거 같다. 

 

다시 한 번 장례지도사분이 가족 앞에서 어머님의 본관 성함 함자 등등을 확인 시켜 준다.  장례일정은 어머님의 종교에 맞춰달라고 하여 기독교 식으로 진행하기로 했고 그에 따라 제단도 갖춰 졌다. 

 

오늘 돌아가셨고 내일 오후 1시에 입관, 발인은 모레 아침 7시 라 한다, 화장장은 벽제 승화원으로 정해 졌다고 하고 화장 시간은 10시라 한다.  이렇게 일정이 정해 지고 가족 중에 한 분이 아버님 산소에 가서 내일 개장해서 납골당에 함께 모시기로 했다. 

 

삼촌이 기꺼이 내려가셔서 아버님 산소를 정리 해 주시겠다 했다.  모레 발인 후 납골당에서 만나 같이 모시기로 했다.  납골당을 어디로 정해야 할까 미리미리 해 두었으면 이리 급하진 않았을텐데..  조문객 접대 요령, 인사 하는 법, 여상주의 조문객 안내 가족 들의 할 일들을 설명 해주고 본인은 항상 눈에 띠는 곳에 계실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당부를 하시고 밖에 접객실에 도우미 분들 인사 소개를 했다. 

 

첫 날이라도 문상객이 있을 테니 저녁 10시까지 도와 주시겠다고 한다.  조문객이 많이 오실까?  벌써 접객실에서 도우미 분들은 음식 세팅에 여념이 없다.  음식을 조그만 접시에 담는 분, 식탁 보를 정리 하시는 분 등등 오랫동안 함께 하셨는지 손발이 척척 잘 맞는 듯 보였다.  그동안 관심있게 보지 않았던 세세한 부분들이 이제서야 눈에 들어온다.  도우미 분들 중 제일 연장자 분인가 하는 분은 아내와 오랫동안 이야기 하고 있다.  나중에 들어보니 음식의 주문관리 조문객이 왔을 때 여상주의 역할, 접객실의 활용 등에 대하여 아주 깊게 이야기 해 주었다 한다. 

이제 우리 형제가 조문객을 맞는다. 

상복으로 갖춰 입고 조문오신 분들과 인사하고 접객실에 가서 간단한 대화를 하고 형제지만 각각의 조문객이 오시다보니 서로 바쁘다.  그래도 빈소는 비워두면 안된다 하여 동생과 나는 빈소와 접객실을 날라다니고 있다. 

아까 도우미 여사분들이 제일먼저 식사를 차려줘서 억지로라도 먹어야 한다고 하시고 그렇지 않아도 하루종일 한끼도 못 먹은 차에 허겁지겁 식사를 마쳤다.  장례식장 음식이지만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고 깔끔해서 보기 좋았다. 

어느덧 10시가 넘었다. 

 

첫 날인데도 제법 조문객들이 오셨다.  밖에 하나씩 배달되는 근조화환과 그동안 내가 소홀하게 여겼던 친구와 친척분들이 다녀가셨다.  피곤은 하지만 그리 피곤을 느끼진 않는다.  오늘과 내일 밤은 여기서 보내야 한다.  장례지도사 분이 밤에 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오시라 해서 집에 들려 준비 해 온 것이 가족 방에 그대로 있다.  과연 잠들 수 있을까?

첫날 도우미 분들은 내일 또 오시겠다는 인사를 하고 가시고 장례지도사 분도 내일 다시 오시겠다고 한다.  급할때 바로 옆에서 도와 주셨는데 막상 가신다고 하니 또 불안해 진다. 

 

혹 밤새 무슨일이라도 생기면 어쩌지?  장례지도사분은 걱정하지 말라 하시며 언제든 전화 주시면 바로 조치 해 드린다 한다.  그럴일은 없겠지…  

 

손님들도 얼추 다 가시고, 옛날엔 밤새고 술마시고, 노름하고 시끌벅적 했는데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아닌가 보다 이제서야 한 숨 돌리고 주변을 돌아본다.  아내도 자기 친구들이 왔다 갓고 마지막 남은 친구와 이야기 하고 있다.  잠깐 짬을 내서 옆 상가를 봤다.  거기도 000상조 깃발이 놓여 있다. 

 

그래 요즘엔 전문가가 있어야 편하게 할 수 있는것이구나 하고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옆 상가도 조문객이 다 갓는지 조용해 졌다. 

어머님과 같은 날 돌아가신 분이신데 왠지 기분이 이상해 진다.  다시 우리 상가로 돌아오니 아내 친구들도 일어나서 돌아가려 한다.  제법 조문객이 오셨는데 다시 처음에 빈소를 들어왔듯이 정돈되어 있다. 하루종일 같은 공간에 있다보니 어느 덧 익숙해 졌다.  어머님이 계신 빈소로 다시 돌아가 어머님 영정을 마주하고 앉았다. 

 

장례지도사 분이 알려 준대로 어머님과의 대화를 시작했다.  그 동안 어머님과의 추억을 하나하나 마음 속에서 대화를 하고 나니 맘이 좀 편해 졌다.  안녕히 주무세요 얼마만에 해 보는 인사인지……

잠자리가 바뀌어 인지 잠을 설쳤다. 

집에서 가져온 이불과 벼게 등이 이리도 유효한지 원래 자면 안되는데 가족실에서 잠깐이나마 눈을 부치고 일어나니 어제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어젯 밤 조문객이 모두 돌아가시고 마침 은행 다니는 사촌동생이 조의금을 담당했는데 온 식구가 모여 정산을 마치니 어느 덧 시간이 새벽이 다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어제는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서 무슨 일을 어떻게 처리 했는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앰블런스를 통해 이곳에 모셔오고 빈소를 결정하고 음식을 주문하고 납골당을 결정하고 아버님 이장을 하고 …. 

 

 

얼핏 스치는 기억에만 어마어마한 일들을 순식간에 치룬것이다.  잘 한 결정인지 격식에 맞춰 한 것인지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냥 뭐에 홀린 듯 일을 치러 버렸다.  아내도 힘든지 부운얼굴로 아침상을 차린다.  어제 도우미 여사분들이 하는 것을 본 듯 제법 능숙하게 아침상을 차리고 식구를 불러모은다.  애들도 잠자리에서 일어나 오늘의 일정을 준비한다.  처음 치러보는 장례에 그래도 어제 장례지도사분이 애들에게도 의미와 담당역할을 정해 줘 나름대로들 열심히 이리저리들 움직였다.  어느새 애들이 많이 컷구나

 

다시 어머님 빈소에 동생과 나란히 앉아 있다.  동생은 걱정이 많은 편이다.  장례비용이 얼마나 될까? 우리가 얼마나 각출해야 할까?  가게를 하는 동생은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걱정이 앞서나보다.  나도 직장생활 하며 간간히 살았는데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이 나오면 어떻게 하지?  어제 장례지도사 분께 대략 여쭤봐서 얼마 정도 들거라는 예상은 했는데 혹시 많이 초과하면 어떻하지? 그래도 장례지도사분이 이야기 했으니 거기서 크게 벗어나진 않겠지 일단 카드로라도 메꿔 봐야지

아침부터 삼촌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아버님 개장을 8시부터 시작했다고, 아버님 묘를 다른 분께 부탁해서 개장을 해야 하다니…   정말 죄송합니다.  내일 납골당에 모시고 와서 함께 안장 할 수 있게 해 주신다고 한다.  거기서도 절차는 복잡한 가 보다 개장하고 화장하고 유골함에 모시고 또 개장하기 전에 신고도 해야 하고….  상 끝나고 삼촌과 소주 한잔 해 야 겠다.

아침을 먹고 잠시 있으니 장례지도사 분이 오셨다. 

왜 그리 반가운지 왠지 든든한 지원군을 만난 듯 하다.  어제와는 다르게 무슨 큰 여행용 가방을 들고 오셨다.  의아해 하는 우리 형제를 보며 입관때 사용될 용품들이 들어 있다고 한다.  아 오늘 입관이지….

 

어제 늦게 어머님의 사진을 정리해서 연합아카이브 회사메일로 넣어 드렸다.  동생 내외가 어머님 집에 들려 찾은 사진을 정리하며 약 20여장의 사진을 추려 회사로 보냈다.  정신이 없어 저녁때나 되어서 보냈는데 아카이브 제작이 완료 되었으니 확인 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디지털 시대여서 그런지 오고가는 불편함 없이 핸드폰으로 바로 확인 가능했다.  아 어머님이 이렇게 사셨구나 사진 속의 어머님은 우리의 인생과 맞닿아 있고 나와 동생은 그 인생의 연장선에 서 있는 것이다.  사진과 함께 적힌 글을 읽으며 가슴까지 그리움이 밀려온다.  이 영상을 오시는 조문객이 보실 수 있도록 해야겠다. 

 

장례지도사 분이 입관전 1시간 전부터 입관 준비를 하고 시간이 되면 직접 부르러 오신다고 하신다.  오늘의 일정이 시작된다.

도우미 분들이 오셨다.  미리 점심을 차려 주고 조문객을 맞으라 한다.  오늘은 교회에서 많은 분들이 오셨다.  동생과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각각 많은 분들이 추도를 해 주시고 예배를 주관하여 주셨다. 

어머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힘들다.  입관시간 내내 어머님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정성스레 입관을 진행하는 장례지도사의 모습은 어제 본 그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무척 경건하고 존경심 마저 들게 한다.  마지막 관에 모시기 전 열어본 관 속에 아름답게 장식된 꽃 장식은 어머님의 마지막 길에 꽃길을 밟고 가시는 듯 그 위에서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주무시고 계신다. 

 

이게 어머님의 모습을 보는 마지막이구나 …

입관실에서도 나는 도움을 필요로 했다.  정말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 나를 더 슬프게 한다.  그렇지만 여기에 장례지도사가 곁에 있으니 그 분의 모습이 그리 크게 보일 수 가 없다. 

 

입관이 끝나고 장례지도사분이 모든 가족에게 예식장으로 모이라 한다. 

그 때 참석하신 모든 분들도 함께 모이라 한다.  그곳에서 마지막 예배를 진행한다 한다.  어머님이 생전에 다니시던 교회의 목사님이 주관하셔서 예배를 진행하기로 했다.  살아계실때 그렇게 목사님 칭찬을 많이하셨는데 …

 

예식실에서 진행 된 예배는 많은 사람이 어머님을 기억하게 하는데 충분한 시간이 된 것 같다.  뒤에서 간간히 어머님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목소리가 들린다.  평소 모르시는 분인데 어머님을 위해 기도를 해 주시는 구나 너무 빡빡하게만 살아온 것이 아닌가 그래도 아직 세상은 살만한 곳이구나  

 

장례예배가 끝나고 다시 빈소로 올라왔다.  그동안 어머님 사진만 덩그러니 홀로 계셨다.  빈소에 도착하자마자 입관 때문에 조문하지 못한 분들이 꽤나 많이 기다리고 계셨다. 

장례지도사분이 그 사이 올라오셔서 팔에 두줄짜리 완장을 채워주셨다.  요새는 이 것으로 입관 전과 후를 구분한단다.  옛날에는 입관 후 상복을 입었다는데 상 자체가 짧다보니 상복은 처음부터 입고 완장으로 구분을 한다고 한다. 

 

처음 듣는 이야기이다. 

아 그렇구나 동생과 나는 급히 조문객을 맞았고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 갔다. 

어제보다 더 많은 조문객이 접객실을 가득 메웠다.  그 사이를 도우미 분들과 아내, 제수씨, 아이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음식상을 차리고 치우고 정리하고 있다.  그 모습을 잠깐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시기에 사람이 필요하구나 그 사이 PS라이프 회사에서 코디란 분이 오셔서 접객실에서 문상객 서빙을 전체 조율하고 있다.  첫 인상으로도 프로의 기운이 보인다.  저 많은 문상객 가운데 문상객의 들고 나는 것부터 시작해서 부족한 음식, 치우는것, 배달, 모두가 적재적소에서 훌륭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조율을 잘하고 있다. 

 

코디는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중에 이야기 들어보니 조문객 접대 방법 요령 등에 대해 그때그때 상황에 맞도록 대처할 수 있게 곁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금새 아내와 친구처럼 친해진듯 가끔은 서로 손도 잡고 서로 어깨도 두드려 주면서 격려하는 모습이 어머님 장례란 큰 일을 치루는데 정말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한다.

코디란 분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하구나 그 사이 어머님의 아카이브 영상이 접객실에 설치된 TV에서 방영된다.  내가 회사에 보내준 사진이 영상이 되어서 여기 오신 조문객들에게 보여 지고 있다.  우리 가족, 동생가족, 우리의 어린시절, 아버님과의 즐거웠던 시절, 내게 너무나 익숙한 사진들이 흐르고 있다.  모두가 그 영상을 쳐다보고 있다.  거기에 기록된 내용을 읽고 있다.  우리어머니 정말 위대하신 어머님이시다.  여기 오신 문상객들이 돌아가시며 내 어깨를 치고 간다.  어머님이 참 훌륭하신 분이셨네…… 

모두의 마음속에 깊이 기억될 수 있는 아카이브란 것이 너무도 훌륭한 장례식을 만들어 주었다. 

시계는 밤 10시 30분을 넘어가고 있다. 

어느덧 조문객도 다 가시고 다시 접객실이 썰렁해 졌다.  그 사이 아내와 코디는 무엇인가를 분주히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고 종이에 적고 있다.  이제 난 무엇을 준비해야 하지? 삼촌께서 전화와서 아버님 유골이 내일 1시에 납골당에 도착한단다. 

 

내일은 어떻게 해야하지?

 

아 모르겠다.  내일 장례지도사분이 알아서 해 주시겠지.. 

걱정말라 하셨으니 장례지도사 분은 내일 발인 2시간 전에 오시겠다고 하고 9시경에 돌아가셨다.  발인이 7신데 5시에 오신다고? 그럴바엔 여기서 나랑 소주나 한잔 하자고 할 걸 그랬나? 

이젠 어느덧 이 분위기가 익숙해 졌는지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생긴 것 같다.  코디 분도 아내와 이야기가 끝낫는지 내일 새벽에 오시겠다고 하고 다들 돌아가셨다.  이제 다시 가족과의 시간이다. 

조카가 2일동안 부의금 정리를 맡아서 깔끔하게 정리 해 주었다.  아내와 제수씨는 내일 가져갈 음식이며 음료수며 이것저것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장례식장 관계자가 와서 정산서를 주고 갓다.  일단 부의금 들어 온 것을 맞춰보고 계산하겠다고 하고나니 알았다고 한다.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떳다. 

무의식적으로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5분이다.  벌써 장례지도사분과 코디분이 오셨다.  헉, 이시간에 여기 오신거면 몇시부터 움직이신 건가?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좀 일찍 들어가시라 할 걸, 정말 피곤하실텐데도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으신다.  역시 프로는 프로구나….  

 

빈소로 가서 어머님과 마주 앉았다.  오늘 발인이랍니다.  어머님….

코디분이 아침상을 차려주었다. 

모두들 잠이 부족한지 입이 깔깔해서 안먹겠다고 했는데도 코디 분이 억지로라도 먹어야 한다며 상을 차렸다.  부시시한 얼굴로 밥상을 마주하고 있으니 장례식장 반찬과 다른 몇 가지가 놓여 있다.  특별히 젓갈하고 김이 놓여 있다. 

 

이게 뭐지 의하해 쳐다보니 코디분이 장례식장 음식이 질리셨을 테니 손수 몇 가지 준비했다하신다.  그렇지 않아도 장례식장 음식이 질리던 차였다.  같은 종류만 몇 끼 먹다보니 좀 그랬는데….  코디분의 배려가 새삼 감사하다.  오늘 함께 가실거죠?  가실건가요를 물어보지 않고 가실거죠? 이렇게 물어보는 내가 어느새 이분들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구나라고 새삼 느끼게 되었다.

분주히 짐을 나르고 차에 싣고 마지막 발인예배중이다. 

새벽인데도 교회에서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셨다.  납골당까지 함께 가주신단다.  발인예배가 끝나고 아들놈이 어머님 영정사진을 들었다.  우리 집안의 장손이구나. 그래서 어머님이 우리 큰애 낫을 때 그리 좋아하셨나? 영정사진 들어줄 손주가 생기셔서?  그런 생각도 잠시 영정사진을 맨 앞으로 어머님 안치된 안치실로 이동중이다.  관보에 싸인 어머님을 운구 해서 리무진에 모셨다.  많은 사람들이 어머님 구 앞에서 찬송가와 기도로 어머님을 전송한다. 

 

장례지도사와 코디 분들도 엄숙한 표정으로 이 과정을 함께하고 있다.  평생 한 번 못 타본 리무진 차량에 어머님을 모시고 아들이 맨 앞자리에 탓다 어머님 동생인 이모님 두분이 리무진에 탑승하시게 하고 우리는 운구용 버스에 올라 탓다.  이제 벽제 화장장으로 이동이다.  이렇게 장례식장에서의 2박 3일이 마무리 되었다. 

 

장례식장에서 화장장까지는 일사천리였다. 

 

출근시간때인데도 별 막힘 없이 잘 빠져 나간다. 출근 할 때 반대의 입장에서 운구 차량을 볼때와는 그 모습이 전혀 다르다.  창 밖에 보이는 도로의 사람들이 오늘따라 왜 그리 낯 설은지 운구 차량 안에서는 동생 내외와 우리 애들 조카들, 그리고 외사촌 등 그래도 버스가 커서 그런지 군데군데 빈 자리가 많이 보인다.  교회 분들은 따로 차량으로 이동 중이시다. 

 

음료수나 이런 것들은 챙겨 넣었나?  불현 듯 생각이 나 옆에 있는 아내에게 물었더니 아침에 코디가 벌써 떡과 물을 넣어 드렸단다.  자리에 앉으니 코디 분이 떡과 물을 배분해 준다.  장례지도사 분은 본인 차로 화장장으로 이동 중이고 코디분은 버스로 우리 가족과 함께 이동 중이다,. 

 

화장 끝나고 바로 납골당으로 이동하면 아무래도 점심이 늦어지니 중간에 시장하시지 않게 지금 요기라도 하라고 하신다.  역시 전문가는 세세한 곳까지 신경 쓰는구나 역시 전문가에게 일임한게 다행이구나

 

참으로 생소하다 화장장이란 곳 으시시하고 음침할 것이라 생각한 화장장은 내 예상과 완전히 빗나가버렸다. 

 

잘 지어진 현대식 건물에 이곳이 화장장이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최소한 외형적으로는 그랬다.  단지 무수히 많은 장례차량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것을 제외하고는 이곳이 화장장인지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들어서는 입구에 서울시립승화원이라는 입간판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이곳이 화장장이구나 근래에 들어 처음 와보는 곳이다.  버스가 도착하니 기사분과 코디가 안내를 해 준다.  임시 안치 시간 전에 시간이 약간 있으니 가능한 한 한 곳에 함께 계시라고 한다. 

 

안내 방송이 나올 테니 그때 버스 리무진 앞으로 오시라고 한다.  무슨 뜻인지 잘 이해는 가지 않지만 일단 건물 안으로 발을 옮겼다.  꽤 큰 건물에 이미 전 시간에 화장을 마쳤는지 유골함을 가슴에 안고 가족들이 저만치서 울면서 내려온다.  나도 곧 저런 모습이겠구나. 몇 일 전 까지만 해도 어머님을 만져볼수 있었는데 이제는 정말 이 모든 것이 한 줌의 재로 변하는 구나 나도 모르게 마지막 어머니 볼을 만졌을 때의 느낌을 되살리려 손가락을 비벼본다.

 

건물 안에도 사람이 꽤나 모여 있다.  통곡하는 사람, 술에 취해 얼굴이 벌겋게 되어 돌아다니는 사람, 이리저리 마지막 고인을 보내는 모습이 뒤섞여 있다.

 

오전 10시 화장 예약하신 분들 임시 안치가 있다고 방송에 나온다 우리는 서둘러 입구로 향했다. 먼저도착한 순서대로 한 분씩 고인 운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드디어 어머님이 계신 리무진이 우리 앞에 섯고 우리는 다시 어머님을 맞이했다.  차에서 내리는 어머님의 마지막 모습은 단지 눈에 익숙한 어머님의 구와 그를 알리는 작은 위패가 전부였다. 

 

짧은 운구를 마치고 이송용 트레이에 올려진 어머님의 구는 안내자의 안내에 따라 화장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짧은 흐느낌의 시간 중에 어머님과의 지난일 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무심코 어머님을 따라걷다보니 안내자가 우리를 다른 길로 안내한다.  여기가 어머님과의 마지막 자리 입니다. 

 

우리는 화로를 볼 수 있는 전망대에 안내되고 어머님의 구는 그 화로 앞에서 잠시의 멈춤을 하였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모두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어머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생하셨습니다. 

 

편한 곳에서 영원히 안식하시고 아버님 만나서 오랜만에 회포 푸세요 그리고 나아주셔셔 감사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말은 속사포로 가슴에서 토해냈다.  화로의 문이 열리고 어머님의 모습이 화로안으로 사라졌다.  버튼 몇 번에 어머님은 저 뜨거운 화로 안에서 한 줌의 재로 변하고 계시는 거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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